장례

나의 첫 시신 운구 경험 - 현장실습 기록

광명 정 2025. 12. 1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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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지도사 자격 취득을 위한 교육과정 이수를 위해 모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현장실습을 나왔다. 학원에서 이론과 실기를 배우고 현장 경험을 나선 것이다. 막상 현장에 나가려니 긴장과 호기심이 동시에 들었다. 

 

첫날은 상견례를 하고 빈소와 안치실을 청소하는 업무로 지나갔다. 입관이 두 차례 있었지만 상조팀장이 실습생 참관을 허락하지 않아 고인을 마주할 기회는 없었다. 이때만 해도 다음날 엄청난 일이 닥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둘째 날 입관은 실습생 참관이 허락되었다. 입관실에서 동기생들과 함께 팀장의 지시에 따라 입관용품 정리와 관 안에 꽃장식을 직접 도왔다. 팀장과 부사수가 진행한 소렴 과정은 가까이서 직접 보면서 팀장의 설명을 들었다. 작업 상황에 몰입하느라 현장에서 고인을 첫 대면한 느낌은 특별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대렴은 유족이 함께하기 때문에 참관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전 일정이 마무리되고 늦은 점심 후 대기중인데 갑작스럽게 장례식장 관리팀장이 찾아왔다.

"고독사 시신 수습 연락이 와서 시신 운구를 가야합니다. 한 분만 도와주세요..."

 

순간 실습생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 내게 시선이 모아졌다. 남자 실습생은 나 포함해서 2명. 한 명은 오전에 타 병원 영안실 시신 이송을 이미 다녀와서 자연스럽게 내가 가게 됐다.

 

합정역 근처,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원룸텔

 

현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관리팀장은 "엘리베이터가 없을 것 같다"라고 걱정을 내비쳤다. 오래된 건물이라 계단으로 시신을 옮겨야 할 거 같다는 말이었다.

 

신고지에 도착하니 사복형사 한 명이 건물 앞에서 대기하고 있어서 안내에 따라 들것을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만이 위로 이어져 있었다.

 

5층에 도착해 형사가 앞장서 좁은 복도를 지나 방 문 하나를 열었다. 3~4평 남짓한 공간은 마치 오래 쌓인 물건들이 가득하고 먹다 만 음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순간 숨이 막혔다.

좁은 방안 한편에 간이침대 위에 노인분이 옷을 걸치지 않은 채 누워 있었다. 머리는 침대 밖으로 떨어져 있고, 복수 인해 배는 큰 물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사망한 지 하루 이틀 정도 된 듯 보였고 몸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흘러나왔다.

 

관리팀장이 첫마디를 내뱉었다.

"이걸 어떻게 운반하지..."

 

황당함이 그대로 내게 전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해야 했다.

 

처음 들어본 고인의 무게

관리팀장은 먼저 고인의 몸에 관보를 덮고 여미더니 들것을 옆에 놓고 "도와주세요"하고 외쳤다. 나는 뒤따라 들어갔기에 문쪽에 섰다. 그쪽이 고인의 머리 쪽이었다. 고인을 들것에 옮기고 들것을 드는 순간 예상보다 무거워 긴장했다. '고인의 무게'라는 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문제는 이제 방을 빠져나가는 일이었다. 통로가 너무 좁고 바닥 상태도 너무 지저분해서 들것을 제대로 들 수가 없었다. 여러 번 방향을 틀어 간신히 방을 빠져나오자 긴 복도가 있고 그다음 계단이 나타났다.

 

5층에서 1층까지,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는 머리 쪽을 들고 아내에 서고 관리팀장은 뒤에서 따라잡고 방향을 지시했다. 계단은 좁고 가팔랐고, 고인의 무게는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한 층을 한 번에 내려올 수 없었다. 반층 내려오고 쉬고 또 반층 내려오고 쉬고 열 번은 쉬면서 내려왔다. 마지막 반층 남은 계단을 내려왔을 때는 정말 들것을 든 채로 주저 않을 뻔했다.

 

마지막으로 1층에 도착해서는 두 사람 다 들것을 내려놓고 큰 숨을 몰아쉬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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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생하셨어요

그렇게 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에 고인을 모시고 돌아오니 작업을 마친 관리팀장이 진심 어린 말을 건넸다.

 

"정말 고생하셨어요..."

 

그 말이 그대로 들어왔다. 그리고 긴장이 사라지고 진짜 힘이 빠졌다. 이렇게 나의 현장실습 첫 시신 운구는 마무리 됐다.

 

고인은 이곳에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유족이 오면 연고지로 이동한다고 했다. 고단한 삶을 사셨을 고인이 부디 평안히 영면에 들기를 마음 모아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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